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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잘나가던 극장들

영화 ‘친구’의 무대 범일동의 극장 트리오

기사입력 2022.03.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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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동구일대에는 극장이 18개나 있었다 \고 한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 골목으로 쭉 가면 천보극장이 있었고 대도극장, 수정극장, 초량극장, 미성극장도 있었다. 범일동엔 삼성 극장, 삼일극장, 보림극장 등이 몰려 있었다.

    보림극장(1955~2007년)과 삼성극장 (1959~2011년)은 국제고무와 삼화고무 공장 이 들어선 교통부 인근에 있었다. 여기에 삼 일극장(1944~2006년)까지 더해 범일동 극장 트리오를 이뤘다. 1940~1950년대에 잇따라 개관한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보림극장은 부산 동구 범일동 영화 거리를 형성하며 유명세를 탔다. 

     

    삼일극장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다. 해방후 삼일극장은 조일극장과 제일극장 등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다가, 1950년대에 다시 삼일극장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영화 「친구」 촬 영지로도 유명한 삼일극장은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수용소로 쓰여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품은 공간이기도 하다.

     

    1959년에 개관한 삼성극장은 삼일극장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삼성극장은 인근의 삼일극장, 보림극장과 함께 범일동에서 재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단층이었던 삼일극장에 비해 삼성극장은 2층 건물에 제법 넓은 관람석을 갖춘 극장이 었다.

     

    1955년에 문을연 보림극장은 원래 남포 동에 위치한 보림백화점내 2층에 자리했었다. 그러다 1968년 당시 범일동 조양직물공장 부지를 매입하여 현재의 자리에서 새로이 개관했다. 개봉관으로 출발했지만 당시 영화가 남포동 극장가를 중심으로 우선 배급되었기 때문에 보림 극장의 영화 배급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개봉관의 체면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보림극장은 1970년대 톱스타 나훈아, 남진, 하춘화 등의 쇼 무대 중심 극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한때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원래 단관이었던 극장들이 동시 상영관이 되었던 것은 경기의 영향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부산 신발 산업의 침체로 공장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보림극장과 삼성극장 주변의 새벽 일일 노동시장은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실직한 신발 업체 근로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삼화, 진양을 비롯한 국내 신발 업계 간판 업체들의 잇단 도산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 해 날품팔이라도 하기 위해 인력시장을 기웃 거렸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날품팔이도 구하지 못한 실직자들은 인근 극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에게 이들 극장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러던 것이 다른 지역에 영화관이 급증하고 부산의 신발 산업도 점차 쇠퇴하면서 두 편 동시 상영관으로 바뀌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한 서면 일대에는 대형 극장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새롭게 개관한 대형 극장들에 밀려 단관이었던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은 동시 상영관으로 탈바꿈해 어렵게나마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극장쇼와 동시 상영관으로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도 1990년대 이후로 차례로 문을 닫았다. 삼일극장은 2006년 동구 범일동 철길 건널목 입체 교차로 진입로 공사를 위해 철거되었다.

    이제 이 극장들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극장이 되었다. 이들 극장은 60년 가까운 세월을 영화의 바다, 부산을 지켜 왔다. 가난한 시절 청춘의 시름을 잠시 달래던 극장 거리, 그곳에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보림극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출처 : 부산스토리텔링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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