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금정구의 시네마천국 동성극장, 국보극장

기사입력 2023.01.12 08:41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1980년대 동래구(현 금정구) 온천장은 동래구 지역의 중심가였다. 온천장의 온천과 동래산성, 동물원, 식물원이 유명한 곳 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고 대형 극장이 1km도 떨어 지지 않게 세 개나 있었다. 2편을 동시에 상영하는 동시상영 극장으로 동성극장, 국보극장과 단편을 재상영하는 온천극장이 있었다.


    20230111_163043.png

    동성극장 / 사진 부산영화체험박물관

     

     

    2본 동시상영관으로 보림극장은 영화 <친구>(곽경택, 2001)에 등장하면서 아직도 기억되는 부산의 동시상영관으로 올라섰지만 온천장의 변두리에 있었던 동성극장은 이제 거의 완전히 잊혀졌다. 동성극장은 1969년 부산 금정구 장전동 652-28번지(금정구 온천장로 137)에 개관한 재개봉관으로 좌석 850개, 입석 80개, 총 930개의 좌석을 보유하고 있었다. 살짝 멀리 부산대학교, 근처에는 수많은 중.고등학교가 모여 있어 주위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동시 상영관임에도 2층 구조에 대형 스크린을 갖춘 데다 그 레퍼토리 또한 대단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세르지오 레오네, 1984)와 < LA 용팔이 >(설태호, 1986)를 붙여 ‘갱스터 특별전’을 한다거나 <천녀유혼>(정소동, 1987)과 <옹기골 뽕녀>(김수영, 1987)를 동시 상영해 오로지 <천녀유혼>을 보고자 극장을 찾은 혈기왕성한 소년들이 호기심을 채우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하기도 했다.

     

    ‘흥행 대작과 성인물을 함께 상영’하는 마케팅 기법은 동성극장을 상징하는 레퍼토리였는데 <플래툰 Platoon>(올리버 스톤, 1986)은 <무릎과 무릎 사이>(이장호, 1984)와 함께, <에이리언 2 Aliens>(제임스 캐머런, 1986)는 <몸 전체로 사랑을 2>(홍파, 1986)와 함께 상영하는 식이었다.

     

    그 시절 소년들은 이 극장을 ‘동성(DS)문화센터’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동성극장은 시내 개봉관이 2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던 시절 500원의 요금을 받았다. 500원으로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내에 초대형 TV를 설치해놓고 또 다른 영화를 비디오로 상영하던 휴게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1.5층이라고 부르던 중간층에는 ‘수면실’까지 있어 학교를 ‘땡땡이’ 친 학생, 외근을 나왔다가 시간을 때워야 할 직장인, 갈 곳 없는 백수 등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휴식의 공간이었다. 그 의미심장한데다 과감하게까지 느껴지는 극장의 이름처럼 옆자리의 모르는 소년들의 허벅지에 손을 척 얹어놓고 영화를 관람하던 아저씨들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동성극장 사상 최고의 해프닝은 <영웅본색> (오우삼, 1986)을 상영할 때 일어났다. 사실 그곳에서 <영웅본색>을 이전에도 상영한 적이 있어 왜 또 상영하나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어쨌든 명작이기 때문에 다시 관람하러 극장을 찾았다. 절대로 함께 상영했던 <빨간 앵두 3>(박호태, 1986) 때문은 아니었다.

     

    두 편의 영화를 모두 감상하고도 시간이 남아 비디오를 상영하던 휴게실에 들른 순간 전율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놀랍게도 <영웅본색 2> (오우삼, 1987)를 상영하고 있었다. 아마도 동성극장의 당시 프로그래머(?)가 아직 한국 개봉을 하지 않은 <영웅본색 2>의 해적판 비디오를 손에 넣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국보극장은 동성극장보다 규모는 컸지만 동성극장과 비교했을 때 좀 떨어진다는 평가가 주였다. 국보극장에서는 대형 가수들의 공연이 이루어지곤 하였는데 혜은이의 리사이틀이 이 극장에서 거행이 되어 한동안 동네 총각들의 심장을 두근두근 하게 만든, 동네가 들썩들썩 할 정도로 큰 행사였다. 동성극장에 비해 7년 늦게 문을 열었지만 12년이나 더 일찍 닫아 버렸다. 폐업 뒤에도 한동안 건물을 그대로 유지 되었는데, 그 건물은 도시락공장으로 사용되곤 했었고 지금은 모 브랜드 커피점으로 바뀌었다.


    20230111_163253.png

    국보극장 / 사진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김형근 동성극장 전 사장은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극장을 물려받아 10여년 정도를 운영했다 한다. 1988년 이후 외화수입이 폭주하고, UIP등 미 직배영화사들이 배급망을 구축하면서, 1990년대에는 해외 우수작들이 개봉되기도 했지만, 온천장 지역의 상권이 쇠퇴하면서 1998년 폐관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가끔씩 오래된 지인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면 동성극장 폐관의 아쉬움이 술안주로 오르지만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한다. 현재는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미성년자가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도, 해적판 비디오로 개봉조차 하지 않았던 영화를 극장에서 비디오로 상영하는 것도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즐거웠던 시절이다. 딱히 즐길만한 문화가 없던 시절 동성극장은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장소이었다.

     

    자료참고 / 한국영화데이타베이스


     

    기사배너.png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