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울 엄마 김남숙 한락 댁이 울 엄마 세상 물정 깜깜이 흥부 남편 대신 제비 새끼 여덟 끌어안고 거센 풍랑 속 수십 년 탑돌이 정성 먹고 자란 우린 또박또박 사람 걸음 새털보다 가벼운 울 엄만 꼬불꼬불 달팽이 걸음 그 큰 힘 어디로 갔나 원래부터 있었나 가진 것처럼 보였었나 미소는 수줍은 스물인데 █ 작품 감상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머니의 힘든 순간이 보인다. 그때는 왜 몰랐는지...지...
오래된 시계 박원배 오래된 식당에서 막걸리 한 병 시켜놓고 오래된 친구를 만난다 세월은 잔을 넘쳐 친구 얼굴에 묻었는데 도리어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의식처럼 첫 잔 건배하고 알만한 놈 소식 물었더니 오래된 시계 멈추었다 한다 술 한 잔 목젖 울리며 넘긴다 그놈만 불현듯 사라진 밤 그에게는 없을 이 밤 굵은 숫자 달력 벽에 그대로이고 찌짐 지지는 소리에 오래된 냄새 여전한데 20세기 언어로 안주하여 땡초장육 홍어삼...
동백꽃 김정숙 좋은 날 양보하고 가장 추운 한겨울에 붉은 꽃 겨우내 피우고 또 피우는 맘 뜨거운 너의 사랑이 가슴속에 꽃 핀다 █ 작품 감상 김정숙 시인은 따뜻하고 좋은 날은 다른 꽃들에게 양보하고 추운 겨울날 꽃 피우는 동백꽃을 본다. 시인은 꽃 피우는 한 시기가 아니고 동백꽃의 전체 생애에 주목한다. 시인은 그냥 흘러가는 해가 뜨고 지고 지구의 공전 과정을 통해 낮과 밤이 찾아오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뛰어넘은 또 다른 의미의 시간을 말하...
아버지 여승익 어릴 적 자다 깬 아침 이불의 지도가 보여도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이불속에서 새 옷 갈아입히시던 모습이 그립다 싸리문 밖에서 들려오던 커다란 목소리 우시장 전대가 두둑한 날이면 구성진 노래 가락 한 번도 공부하라는 언질은 없었어도 어머니가 전해주신 말씀에 흐뭇하게 웃어만 주던 밝았던 얼굴이 그립다 건장하던 몸이 조금씩 여의어 가면서 자전거로 가시던 시내 발걸음이 줄어들었다 어느덧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던 때 기어이 하시고 싶은 말씀...
지우개 좀 주세요 정창래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나 봐요 지우개 좀 주세요 지금껏 살아오며 지울 것이 너무 많아요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뉘우치며 지우고 싶어요 마음에 상처를 드렸나요 용서를 빌어요 지우고 싶어요 너무 많아 다 못 지웠어요 지우개 하나 더 주세요 하나님께 간청 드립니다 저에 잘못 모두 알고 계시잖아요 저에 모든 잘못 회개하며 살게요 하나님 모두 지워주세요 █ 작품 ...
태종대 푸른 밤 김남숙 사윈 겨울밤 안경에 서리꽃 매달고 하얗게 질린 달빛과 희뿌연 가로등이 좁은 길 내어주는 태종대를 걷는다 그녀와 나누었던 말들이 몽돌해변에 자박거린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나는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었나 부단히 애써 봐도 풀리지 않는 물음 불거지는 가슴앓이 시간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새살 돋겠지 █ 작품 감상 시인은 자기가 보았던 사물과 자기가 경험한 장소에서 느낀 본인만...
홍시 이종래 푸르고 딱딱한 열매 천둥 번개 가마솥 열기 인내로 견디어내고 삶에 지쳐 허우적 그리며 푸르름을 건너 황혼의 길을 걸으면 어느덧 내 삶은 말랑말랑 한 줌의 작은 생명이 까치밥 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 작품 감상 시인의 눈에 비친 까치밥이 된 홍시의 삶이 보였나 보다. 보통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그냥 보낸 일상에서 시적 순간을 포착한 이종래 시인의 감성이 돋보인다. 삶의 순간에서 홍시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
사랑의 꽃씨 수향 황인숙 나는 꽃씨를 뿌리며 다니고 싶다 바람 따라 향기롭게 날아가 앉아 머무는 곳에 피어나는 꽃씨가 되고 싶다 꽃잎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꽃을 피우며 향기를 품어 낼 것이다 나는 소리 없이 머물며 그대를 위한 사랑의 향기를 풍겨 줄 것이다 █작품 감상 사랑의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은 어떤 것일까? 요란스럽지도 않고 나를 내세우지 않으며 은은히 멀리서 지켜보면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