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금정구 단체탐방 - 30년 축구로 이어온 열정 “금정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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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금정구 단체탐방 - 30년 축구로 이어온 열정 “금정골 사람들”

금정골 사람들의 역사 (존칭생략)

모임의 시작은 1992년이었다. 그해 총선에 금정구 민주당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낙선하고 그 열정적인 만남이 너무나 아쉽고 소중하여 축구로라도 만남을 지속하자고 제안하였다.

 

금정골사람들의 태동은 1993년이라 보아야 하겠다. 초기 회원은 이용흠, 최순호, 송융광, 김홍수, 박호섭, 차영길, 배한운(조금 뒤에 들어옴), 김재규, 김정호, 이수윤, 김병군, 최인호, 윤경태, 박태수, 진순진 등 이었다. 초대회장은 김정호, 총무는 최인호 이었다.

 

이후 1996년 사상구 정윤재 캠프에 있었던 멤버(이상봉, 배부기, 김경환 등)이 합류하면서 인적 자원이 조금 넓어졌고, 최순호가 1995년 총무를 맡으며 ‘금정골 사람들’이라는 정식 명칭을 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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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토요일 오후 2시에 공을 차다보니 집에 갈 때는 맨 정신인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이 좋아서 만난 모임이다보니 운동 후에는 늘 술이었다. 알코올이 섞여 있으면 해골물도 마실 기세였다.

 

이후 군에서 제대한 정희종, 손영수 등이 합류하고 흙바닥이었던 대운동장에서 없는 팀끼리 이심전심하던 폭풍(분자생물학과)의 김영진 등이 합류하게 되었다. 한 여름 오후 두시의 대운동장은 거의 극기 훈련이었다. 열사의 흙바닥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무리들... 지금 생각해도 미쳤다. 운동이 아니라 노가다였다.

 

금정골의 부흥기는 고성민(현 기장FC 감독)이 들어오고 부터이다. 고성민 감독이 프로 생활을 은퇴하고 부산대 앞에서 고기집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몇몇 회원이 몰려가 학연, 지연 등 있는 빽 없는 빽 다 동원하여 금정골에 끌어 들였다. 고감독의 후일담은 맨 먼저 찾아와 같이 하자는 팀이 금정골이었다고 한다. 의리의 싸나이!!!!

 

고성민 감독은 부산대 각 동아리에서 뛰어난 자원들을 졸업 후 금정골에 가입시켰다. 법대 동아리의 허주현, 임경섭 등이 금정골에 합류하고 그 시절 금정골의 가장 치열한 상대였던 체교과 출신의 박철준, 구진호. 이철희, 추연일, 김현섭, 손형석, 하인목 등등 졸업 후 금정골에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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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회원들의 지인들이 하나 둘씩 합류하게 되었다. 차영길의 제자였던 김도성, 고 이수윤 선배의 지인이셨던 권혁철, 한문학과 조교였던 배부기의 후배들, 소리 소문없이 합류한 김건우, 김태완 등 축구 좀 한다는 졸업생들이 금정골에 합류하곤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동아리에서는 쫌 한다는 애들이 금정골에만 들어오면 축구를 거의 다시 배우다시피 하였다는 것이다. 걸걸한 뻐꾸기를 날리던 선배들의 영향도 컷을 것이다.

 

한때는 3팀으로 나누어 운동해야 할 정도로 일요일 마다 40명 정도씩 참여할 때도 있었지만 한 여름에는 11명이 안모여 국제 규격의 좋은 운동장에서 숏게임을 한 적도 부지기 수 이다.

 

배부기의 배려로 남해에서 하곤 하던 전지훈련도 즐거웠다.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봉고 몇 대에 나눠 타고 1박2일의 전지훈련도 많은 추억을 남겼다. 술이 떡이 되어 해변가를 방황하던 회원들의 일화는 지금도 아찔하다. 술이 떡이 되어 모르는 차 밑에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차가 없더라는... 술이 덜 깬 상태로 속도 조절이 안 되어 담벼락을 들이 받는 회원도 있었다. 그 담벼락은 아직도 부수어진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전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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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 다는데 금정골 사람들은 내년이면 창단 30주년을 맞이한다. 30년의 굴곡마다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회원을 이끌고 밀어주던 선배들의 수고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금정골도 없을 것이다. 이강원 같은 경우는 코찔찔하던 아들 동엽이가 장성해 한때는 아버지한테 형님 하며 같이 운동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다양한 연령층, 직업군을 가진 회원들이 금정골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으니 한 때 활발했던 인물들이 이런 저런 연유로 얼굴보기가 힘들어 지기도 하지만 다시 젊은 얼굴이 금정골에 이름을 올려서 좋다. 사람이 좋아서 사람으로 만들어진 팀이니 사람에 대한 애정만큼은 빛바래지 않기를 기대한다.

 

 

창단 30년, 금정골 역사의 굴곡에서 함께 땀 흘리고 파이팅을 외치던 소리가 귓가에 아직 맴돌고 있다. 내년쯤에는 성대한 홈커밍 데이를 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금정골사람들 참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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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해후배 축구대회 우승(1999년 5월)

제6회 전대협배 전국축구대회 준우승(2001년)

제2회 부마항쟁기 시민축구대회 우승(2001년 11월)

제5회 6월 민주항쟁기 시민축구대회 일반부 우승(2003년 6월)

제7회 전대협배 전국축구대회 우승(2004년 5월)

제6회 6월 민주항쟁기 시민축구대회 청년부 3위(2004년 6월)

 

금정골은 전통적으로 독특한 컬러가 있다. 타 팀에 비해 선출(선수출신) 등의 전문 자원이 항상 부족했지만 어떤 게임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선출은 단 2명 이상봉(고등), 고성민(프로) 이었다.

 

금정골의 태동도 그러하지만 지난 선배 회원들은 민주화라는 명제에 열정을 쏟아 부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축구를 대하는 열정도 남달랐다. 이런 열정은 게임이나 대회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객관적으로 열세가 분명한 게임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화려함은 적었지만 유기적인 플레이와 끈끈한 수비는 상대를 질리게 만들곤 하였다. 승리를 위해서는 한 두골이면 충분하였다. 우리는 거의 골을 먹지 않았으니까.. ㅎ

   

 

2003년 6월배 우승 

6월민주항쟁배 대회는 1999년 1회가 치러졌다. 고 박호섭 선배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 만든 대회인데 호섭 배는 안도와 준다고 투덜거렸지만 예산이 부족할 때 금정골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상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2003년은 이강원이 회장일 때이다. 고성민이 꾸준히 운동장에 나오며 회원들의 기본기도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고 이리저리 팀의 분위기가 많이 좋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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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은 사직 아시아드 보조구장에서 피닉스라는 팀과 하게 되었다. 상대는 거의 선출로 구성되어 빡빡한 경기였다. 제법 빡시게 차다가 상대에게 먼저 한 골을 내어주고는 열세일 때 상대는 시간 지연작전으로 나왔다. 상대 골키퍼의 고의 시간지연으로 프리킥을 얻었고 고성민이 보기 좋게 넣으며 승부차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빙그레 웃으며 우승을 예감했다. 우리전력의 70%를 차지하던 이상봉이 골키퍼 이였으니까... 양팀 7명씩 승부차기를 하는 긴장의 연속에서 우리는 모두 골을 성공시키고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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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뒷풀이 이다. 고성민이 운영하는 오늘은 불고기에서 뒷풀이를 하였는데 우승컵에 황금 비율의 술을 따라 모두가 원샷을 하였다. 황금 비율은 맥주 한 병 + 소주 한 병.. 거의가 기절 직전 상태였던 것 같다. 우승상금 100만원에 뒷풀이 회식비가 98만원이 나왔다. 그것도 상당히 할인해서... 그리고 술 귀신들은 이어서 2차 3차까지 갖는데.. 집에 갈 때가 새벽5시 였던가????

 

그 때 금정골의 마지막 정리 멘트는 추연일의 말이었다. “오늘은 기쁘고, 내일부터는 다시 즐기는 축구로 돌아가자.!!” 우승은 좋다. 뭔가 함께 이루어 냈다는 경험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축구가 좋은 이유는 함께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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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골의 활동

금정골사람들은 축구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사회 봉사활동도 많이 하였다. 장애인 등반대회에 자원봉사자로 나서 돕기도 하였고, 아름다운가게에 여러 물품을 기증하고 판매봉사도 하여 수익을 모두 기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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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모임의 딱딱함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 좋은 활동들이 많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범위가 더 넓은 활동도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리라..

 

 

마무리하며...

‘금정골사람들’은 사람이 좋아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사람이 좋아서 30년의 인연이 이어지는 회원들도 많을 것이다. 예전처럼 대회 활동이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시대의 흐름이 그러하니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세월의 흐름 동안 모임의 주축 회원은 바뀌어 가지만 ‘금정골사람들’ 고유의 색깔과 끈끈함은 계속이어지고 있다. 강산이 3번이나 변하는 시간 동안 때로는 넓은, 때로는 좁은 나이테가 쌓여있다. 선배들의 열정과 수고가 후배에게 전해져 ‘금정골사람들’은 점점 단단해 질 것이다. 지금의 후배들도 곧 선배가 되어 새로운 후배들에게 농쩍은 술잔을 기울일 것이다.

 

그렇게 인생은 흐르고. 또 새로운 시대는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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