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의 표현법에 관한 한국식 조형과 반응 - 한재철 개인전을 보고 / 피카소갤러리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던의 표현법에 관한 한국식 조형과 반응 - 한재철 개인전을 보고 / 피카소갤러리

KakaoTalk_20240308_134226589.jpg

  

피카소갤러리(부산)에서 한재철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모처럼 발걸음을 해운대로 옮겼다. 

 

한재철 작가는 부산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꽤 지명도 있는 중견작가이다. 

그간 SNS나 소식지를 통해 간간이 최근 작품과 그의 단상을 접했지만 직접 실지로 그의 2020년 이전 시기의 작품들을 접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미술작품을 간접적인 미디어로 충분히 많이 보는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우리가 직접 작가를 만나지 않는다면 작가가 그림 속에 숨겨놓은 역동적인 이야기는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전시장에서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작품을 둘러본 후, 나는 마치 미술관에서 미술의 회화적 양식들이 전시된 여러 관을 동시에 둘러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로 동물과 인물들을 소재로 국한하고 있지만 작품들은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표현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기량이 그만큼 탁월하게 탄탄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학창 시절 그와 같은 화실을 다니기도 했는데 한재철 작가는 그때 이미 탁월한 실력으로 나같이 평범하게 적당히 잘 그렸던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학생들 중의 한 명이었다.


초기의 표현주의 화법과 입체파나 추상화, 하이퍼리얼리즘을 넘나드는 그의 조형적 변주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만의 날숨과 들숨을 들여다보면 단지 피상적인 외형들로 붓질을 쌓아 올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양식만을 오가는 표현법이 아니라 어떠한 역사적 시간 사이로도 우리를 이끌어 준다. 

아마 그는 동물이나 생명이 지닌 역동적인 생동감이나 붓질과 내면 세계의 어떠한 생생함을 한 시기에 탐닉하고 아울러 내었던 것처럼 보인다. 

마치 머이브리지 (Edward James Muggeridge)가 연속사진을 통해서 최초의 이미지 기록장치로 말의 역동성을 포착해 내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 유럽의 회화사가 그네들의 관습 안에서 역사와 시간을 통해 서서히 지평을 드러내는 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작가들이 어느 한 짧은 시기, 그들의 작풍을 통해 그 다양한 양식들의 면모를 드러내는 방식은 색다른 감상법이 될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회화의 문법에 관해 고민해 왔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 작가들만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자연스레 그 표현법으로 떠오르게 된다. 

초기 이미지를 포착했던 <달리는 말의 연속동작 1885>에 영향을 받았던 모더니즘 초기의 작가들이 골몰했었던 '보이는 것과 사실이 지닌 생명력이 어떤 방식의 내적인 재현의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의 회화적 연구들을 통해 함께 드러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KakaoTalk_20240308_133435380_01.jpg

 

나는 작가가 특정시기 (2010-2017) 조형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집중적으로 그렸던 작품들이라는 말을 듣고 비로소 이번 전시의 모든 배경이 이해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그가 천착하고 있는 <항해 시리즈>가 어떠한 개인적인 삶의 유동성과 이해를 통해 하나의 울림으로 드러났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학창 시절 같은 동문이라는 이유로 그의 지나온 작업들과 현재의 이해들을 어렴풋이나마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이제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다양한 미술사적 양식들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볼 수 있을 뿐이라고 전한다.

지금 그가 꾸준하게 천착하는 <항해 시리즈>는 디지털 작업을 통해 데이터, 프린터, 회화적 방법으로 재현되고 있다. 내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결말로 느껴진다. 

회화는 더 이상 내재적으로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문화와 환경의 맥락도 변했다. 그러나 우리가 본다는 사실, 그 자체는 변할 수도 없고, 그 의미와 순간의 생명을 달리 포착해 내는 것은 유일하게 작가들의 덕택이다. 

 

작가 한재철이 보이지 않지만 믿을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은 회화의 프레임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아직은 항해를 지속하는 이유와 그의 순수한 탁월함도 그대로이다. 이번 피카소 갤러리에서의 만남은 내게도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가까운 갤러리 피카소에서 한 번쯤 작가 한재철의 ‘항해’에 관해 잠시 관심을 가져 보아도 충분히 의미있는 외출이 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삶이라는 그림으로 그려내었던 바로 출발 지점에서 내리고 있던 그 닻에 관해서도 함께 반추하면서 말이다. 

 

김현명 (매체비평/미디어 작가)

 

KakaoTalk_20240308_133435380_02.jpg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